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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 행주가 잠이 들 때 당신은시(詩)/시(詩) 2022. 3. 6. 13:57
이제야 움켜 진 속 내로 훔쳐낸 것들로 가득하지
허락 없이 안에 들었다가 나가버린
뜨겁거나 차가워서 날마다 무미건조한
비워지며 너를 지나갈래
쓸어내며 나를 채워줄래
매운 목줄에 묻힌 것을 사무치지 않게
빙글빙글 깊어진 반복 너머로 버려지고
아무도 궁굼 하지 않게 스며드는 졸음
위가 밑으로 밑이 위로 내리지
가지고 있지만 가질 수 없는
길이 난 하루 속도를 포개고 있어
눈가 날개를 접고 있는 마를 줄 아는 몸이라
울긋불긋 가려운 신경들이 사라진 그 자리
뼈대 없는 말처럼 모서리로 닳아가야 해
젖어 있는 허기를 닦아 내고
정직한 여백을 지키는 바닥은
쓰기 위해 있고 퇴고하기 위해 있나니
거기 누구야 그만 울어라
거역할 수 없는 공란을 남기고
어디쯤 흘러버린 구절을 찾으려다
고단했던 그 이름 낮은 대로 걸리고
한 끼 물기만큼 가난해 졌다
(그림 : 한휘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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