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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향해 그는
석공조개처럼 구멍을 판다
물 속 생명의 둥지였던
곰보 바위가
물의 변덕으로 누렇게 떠올랐다
파도가 칠 때마다 부서지는 물결이
구멍마다 하나씩 팽팽한 줄을 건다
불혹의 나이에
빛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주어진 시간이 버거울 때마다
몸에다 구멍을 팠다
바위 속 모래알 같은
바스러진 살점에 거문고 현을 걸었다
끝없이 고요한 시간,
아무도 듣지 않는 곡조를 담았다
그에게선 늘
뭍으로 올라와 몸부림치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슬도 등대에 기대어 눈꺼풀을 닫으면
오동나무 한 그루를 베어
검고 단단한 거문고를 깎고 있는
눈동자보다 까만 바다가 삼킬 듯이 쏘아본다
방어가 없는
꺼져버린 등대를 닮은
그의 눈동자가
항구의 소리에 귀를 연다
까만 딱지가 앉은 바위가 소리를 지른다
아버지의 음률이 바람을 탄다
슬도 :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 산5-3 (방어동)
방어진 항으로 들어오는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바위섬으로 '갯바람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하여 슬도(瑟島)라 불린다. 슬도는 '바다에서 보면 모양이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시루섬 또는 섬 전체가 왕곰보 돌로 덮여 있어 곰보섬이라고도 한다. 슬도에 울려 퍼지는 파도소리를 일컫는 슬도명파(瑟島鳴波)는 방어진 12경중의 하나다. 1950년대 말에 세워진 무인등대가 홀로 슬도를 지키고 있으며 이곳에는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어 낚시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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