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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인 나는 집안에서 처음 대학을 갔다
마을에서도 유일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대학이 못마땅해 통박을 주었고 엄마는
당신은 초등학교도 못 나왔는데 그게 어디냐며
통박을 통박으로 맞받았다 여든 살이나 자신 할머니는
밍기가 이제 큰사람 될 거라고 두고 보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하셨다
할머니는 끼니 때마다 반주 두 잔을 곁들였는데
나는 큰사람이 되기 위해 가끔 반주를 함께 마시기도 하고
주말이나 방학 때면 집 앞 여울가에 나란히 앉아
아버지 몰래 박하맛 나는 수정담배를 나누어 피우기도 했다
그럴 때면 우리 큰 새끼 우야든지 마이 배워
꼭 큰사람 되라고 말하시던 할머니
어느 해 이맘쯤 조반과 반주 두 잔을 달게 드시고
짱짱한 가을볕 속으로 꼿꼿하게 떠나셨다
나는 큰사람이 되기 위해 객지와 바다 위를 무시로 떠돌았지만
서른을 지나 마흔 넘도록 사는 일에 쫓겨 다니기 일쑤였다
볼 때마다 통박을 주던 아버지마저 선산의 산감이 되고서야
큰사람 되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오십이 넘어 무슨 큰사람이 될까 싶었는데
할머니 기제삿날 옷매무새를 갖추느라 거울 앞을 서성대다
백 킬로그램이 넘는 큰 사람이 거울이 다 차도록 서 있었다
(그림 : 김호남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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