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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철 - 봄밤
    시(詩)/이기철 2022. 1. 15. 18:13

     

    가난도 지나고 보면 즐거운 친구라고
    배춧국 김 오르는 양은그릇들이 날을 부딪치며 속삭인다
    쌀과 채소가 내 안에 타올라 목숨이 되는 것을
    나무의 무언(無言)으로는 전할 수 없어 시로 써보는 봄밤
    어느 집 눈썹 여린 처녀가 삼십 촉 전등 아래
    이별이 긴 소설을 읽는가보다

    땅 위에는 내가 아는 이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서까래 아래 제 이름 가꾸듯 제 아이를 다독여 잠재운다
    여기에 우리는 한 生을 살러 왔다

    누가 푸른 밤이면 오리나무 숲에서 비둘기를 울리는지
    동정 다는 아낙의 바느질 소리에 비둘기 울음이 기워지는 봄밤
    잊혀지지 않은 것들은 모두 슬픈 빛깔을 띠고 있다

    숟가락으로 되질해온 생이 나이테 없어
    이제 제 나이 헤는 것도 형벌인 세월

    낫에 잘린 봄풀이 작년의 그루터기 위에
    또 푸르게 돋는다
    여기에 우리는 잠시 주소를 적어두려 왔다 

    어느 집인들 한 오리 근심 없는 집이 있으랴
    군불 때는 연기들은 한 가정의 고통을 태우며 타오르고
    근심이 쌓여 추녀가 낮아지는 집들
    여기에 우리는 한줌의 삶을 기탁하러 왔다

    (그림 : 장용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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