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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 - 근대화슈퍼시(詩)/김수우 2022. 1. 15. 12:44
천마산 밑 초장동 '근대화슈퍼'가 부산항을 펄치고 있다
근대화, 슈퍼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1950년대 점방 그대로다
소주도 팔고 담배도 팔고 감귤도 판다
식용유, 비누, 북어와 번개탄이 거미줄을 치고 기다린다
가난은 이끼 많은 바위처럼 고집 센 가축
희망과 예언은 근대화될 수 없다
거기서 팔리는 것들은 언제나 초월
피란의 역사를 기르는 산동네
늙은 몸집마다 홍역처럼 아직도 부적(符籍)이 피어난다
슬픔은 화석이 되지 않는 것 처럼
그림자는 숨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천마산도 동백꽃도 근대화되긴 글러먹었다
과자 든 네살배기 팔랑팔랑 나비가 되고
막걸리를 사 든 팔순 노인 꾸물구물 애벌레가 된다
때 묻은 차양 위에서 미끄러지는 저녁 햇빛의 발
고장난 계량기를 딛고
아득바득 벼랑에 매달린 근대화슈퍼, 형광등을 켠다
푸득푸득 다친 비둘기처럼
(그림 : 이미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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