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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골목이라면
빨리 걸어 들어가고
아주 천천히 돌아 나올 수도 있겠지
힘들 때 한 번쯤 열린 대문 앞에 걸터앉아 쉴 수도 있고
어디쯤일까
물어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기웃거렸던 마흔 즈음의 낯선 골목들
걸음마다 삐걱거리며
너라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라는 골목에서 늘 너만 빠져나갔다
힘겹게 구부러질 때마다
바람도 돌아 나가는 막다른 어느 모퉁이
목구멍에 걸린 무언가를 억지로 뱉어 내기 위해
선 채로 컥컥거렸다
후미진 골목 같은 나를 삐뚤삐뚤 돌아 나오며
어느 골목이든
들키고 싶지 않은 눈물이 있고
그곳에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고장 난 가로등이 있는 이유를
고장 난 가로등의 꺼진 시간이 더 긴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림 : 박용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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