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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잎 - 안녕, 통리시(詩)/시(詩) 2021. 12. 21. 09:20
저주처럼 폭설이 쏟아진다
홀로 역두로 기어든다
탄도 선로도
덧없는 백색에 휩싸이고
기차는 설원의 짐승처럼 숨 가쁘다
겨울 잎새를 만지작거리다,
역사(驛舍)로 들어간다
그는 보이지 않고
지난여름
접시꽃 마디 따라 나를 쫓아왔었지
술 내음 풍기던 깡마른 사내여
철암 역두 꽃 밑에서 해설피 웃다가
멀어지던 글썽임
눈, 눈 속에서 통리행 버스를 기다린다
통리장이나 구경하고 가야지
슬프도록 짧은 머리의 소녀가 걸어온다
안녕! 함박눈이 입으로 들어오고
원시림이 휙휙 스쳐 간다
휑한 공터에 장날
소녀는 눈을 맞으며 나를 따라온다
허술한 좌판에 함박눈은 쌓이는데
그 늙은 새 장수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애에게 붕어빵을 사주었다
시린 바람을 맞으며
어쩌자고 날 쫓아오는가
“잠깐만 기다려!”
먼 나한정역을 바라보다가
난 어디론가 줄달음치고 있었다
(그림 : 박승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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