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목은 어떤 상징인가
최후의 결심이 생채기를 내는 곳이거나
톡톡 튀는 피의 압력이 움켜쥐는 힘을 손으로 보내는 곳.
안으로 접으면 드러나는 몇 줄
골 깊은 주름을 숨기고 있는 곳.
마음 없이 끌려갔던 손목.
그 경험을 뿌리쳤던 손목.
개인용 시간을 부리는 곳
또는 소매를 덧대고 걷어 올리던 곳.
한 십 년쯤 된 가출이 돌아와 서성거리던
골목 어귀 같기도 하고
햇살을 등에 업고 가는 아버지의 뒷짐 같은 것.
생의 맥박이 또박또박한 지점
이쪽과 저쪽 날씨 짚어주기도 한다
부질없이 걷어붙이다가 오해를 사기도 하고
철들면 여지없이 공손해지는 곳.
손목 비틀리기 전까지 실토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빠짐없이 손목으로 모이고
두 손목이 묶이면 발목까지 엉키는 자리
대체로 가늘어서 만만하게 다가가게 되는 곳
어떤 우악스러운 손에 잡힌
내 두근거리던 처녀 적 같은 손목
(그림 : 윤위동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순남 - 줄 (0) 2021.11.02 이정희 - 딸기는 파랗게 운다 (0) 2021.10.31 심은섭 - 상강(霜降) (0) 2021.10.30 유현숙 - 자미화 그늘 (0) 2021.10.27 정공량 - 꿈 (0) 2021.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