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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은 - 통영(統營)시(詩)/시(詩) 2021. 10. 18. 19:03
붉은 피 푸른 피 수혈하는 삼백 리 바닷길을 걸으면 잘생긴 청년의 근육처럼
불거진 해안선, 바지런한 지어미 지아비의 소맷자락처럼 들어선 포구들
흙으로 나서 흙에서 자란 사람들의 고단한 몸이 순한 파도 음의 잠을 내려놓아
통영의 섬들은 출렁이지 않는다
서호시장도 동피랑 마을도 푸른 바다를 사심 없이 보여줄 뿐, 푸른 눈시울에 생
을 동여맨 통영의 섬들은 고향을 묻지 않는다
통통하게 살 오른 바다가 촘촘히 그물을 펼치는 그때,
통영의 섬들은 통영이 된다
달아공원의 언덕에서 수평선 굽어보면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부서지는 윤슬의
군무(群舞), 질기디질긴 목숨의 뿌리에서 만들어진 신의 보석 상자여서
해마다 돌아오는 멸치 떼처럼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결 따라 회항(回航)하는
영혼의 돛단배가 스르르 미끄러져 오기도 하는 것인데
갈 곳 모른 서러움에 함빡 물이 든 이방인,
닿지 않는 마음에 흰 깃 폭의 쪽배 한 척 띄워 보내는
통영에서는 바다도 사람도 보석 상자에 담긴 한목숨으로 살아간다
(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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