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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록 - 분명 이 근처에시(詩)/시(詩) 2021. 10. 23. 13:49
계단이 사라졌다
놀라지 않는다 계단이란 종종 사라지곤 하니까
곧
계단 위의 집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는다
태연한 이곳에서
내가 산 적이 있긴 한 걸까
다른 곳에서
집이 나를 기다리는 건 아닐까
유리창 밖으로 부풀어 오르던 불빛도, 옥상에서 펄럭이던 세월도,
시간을 붙잡아둔 몇 개의 액자도 모두 사라졌는데
눈이란 믿을 게 못되지
분명
이 근처에 계단이 놓여 있을 거야 저 높이에 창문이 매달려 있을 거야 그 위에 붉을 지붕이 있을 거야
희망은 순식간에 한 채의 집을 짓고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밥을 짓고 여기가 몇번째 집인지 묻지 않고
잠든다
얼마전까지 황무지였고 잠시 집이었으며
다시 허허벌판이 될 이곳에서
(그림 : 박성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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