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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는 상쾌한 아침
폐선 한 척이 나의 발길을 붙잡는다
가던 길 멈추고
태풍 링링에 휩쓸려
갯가까지 떠밀려 온 처참한 모습을 바라본다
어디서 예까지 밀려왔을까
부부가 같이 타던 배였을까
피붙이 같은 배를 살려보려고
애간장 태우며 발버둥쳤을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파도에 너덜너덜 살점이 찢기고
뼈대만 앙상한 빈 배 안에서
내외간의 정다운 웃음도
애간장 녹을 듯한 울음도
흥겨운 뱃노래까지도 환청으로 들린다
갑판 위에 팔딱거릴 고기는 밀어내고
선체 안에 전리품인 양 온갖 잡동사니 다 끌어다
가득 채워 놓은 태풍의 흔적
만선을 꿈꾸며 평화로웠던 그림 한 장만
내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림 : 이선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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