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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 의자 위에 두고 온 볕시(詩)/손택수 2021. 7. 26. 21:34
호수공원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자니 누가 옆에 와서 앉는다
나의 영토를 침범당했다는 느낌, 의자를 전세 낸 처지도 아닌데
그럼 쓰나, 불쾌함이 전달되지 않도록
휴대폰을 보는 척 슬그머니 일어선다
내가 모이를 쪼는 비둘기에게 가까이 갔을 때의 느낌이 이런 것이었겠다
오수를 즐기는 길고양이를 쓰다듬으려 다가갔을 때
당혹스러워하던 고양이의 눈동자도 이해할 만하다
그런 장소들이 있다
그의 몸과 분리할 수 없어서
거기에 있는 볕과 바람과 나무들과
흔들리는 그림자마저
그의 몸만 같아서
부러 이만치 거리를 두고
호젓하게 있게 하고 싶은 곳들
떠나온 자리가 두고 온 몸 같아 멀찌감치서 돌아다본다
의자 위에 두고 온 볕이
앉아 있다(그림 : 노태웅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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