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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희 - 내일의 산책시(詩)/시(詩) 2021. 7. 6. 16:06
세상에 고아같이 버려진 날에도 나는
세상을 고아로 만들어 줄까 생각해요
숨쉬기 힘든 사람에게 무슨 시를 써줄까 물어보다
요람 위에서 흔들리는 붉노랑 상사화를 읽어주었어요
버려진 날에도 나는 참아요
눈이 휑한 길고양이 새끼처럼
밥그릇을 핥는 강아지처럼
참을 만큼만 참기로 해요
오늘처럼 사는 게 아픈 날에도 또 생각해요
5분 후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에게 무슨 책을 읽어줄까
바퀴가 없는 자전거 위에서 푸른 고래수염 시를 써주었어요
사방으로 팔을 뻗고
헤엄쳐 다니는 놀이공원 바람인형인 나는
빈 깡통 같은 날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찌그려요
생각 없이 노는 게 아니에요
이 지느러미를 보세요 얼마나 헤져 있는지
그래, 나에게도, 그저 사느라 사는 나에게도
꿈이 있어 절뚝이는 거리에서 사색해요
나의 세계는 온통 밤뿐
끝까지 밀고 밀리는 게 생이라면
누가 나를 벼랑으로 밀어줬으면 하고 기다려요
바다처럼 디딜 곳이 없다 해도
다만, 디딜 곳을 찾는다 해도
난 다 걸을 거예요
이 슬픈 시간을
그래, 나에게도, 그저 사느라 사는 나에게도 : 페르난두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中에서
(그림 : 안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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