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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 세상 모든 것들의 소음시(詩)/시(詩) 2021. 6. 28. 12:21
인사를 하지 않았다
꽃이 지는 것처럼, 바람이 잦아든 것처럼
그렇게 사라지는 것도 있는 법이다
기우는 햇살 아래의 꽃 그림자
어느 날 내려 쌓였던 밤눈처럼
눈은 녹은 후에는 눈이 아니지
빗방울은 마른 뒤엔 흔적도 없고
꽃이 졌다는 것을 나무는
겨울이 오면 잊게 될 테지
하지만 죽어서도 끝까지 남는 게 청각이듯
소리는 기억에 오랜 자취를 남기고
어떤 날의 빗소리처럼 문득 떠올리겠지
바람이 부는 소리, 꽃이 흔들리는 소리
귓가에 속삭였던 아득한 그 말들
세상의 온갖 소음 속에서
묻힌 채 살아있는 것들,
묵묵히 먼 길 따라오다가
아직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며
문득, 자기 발걸음 소리를 듣게 하는 것
누군가의 말 끝에 또 울려오는 소리의 기억
빗소리에, 바람 소리에 조용히 묻으며
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뭔가를 알고 난 후에도 마치 모르는 것처럼
살아갈 수는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의 소음 속에서
소리를 껴안는 연습을 하면
(그림 : 박영규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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