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오복순 - 치매
    시(詩)/시(詩) 2021. 6. 26. 14:31

     

    어둠이
    지붕의 겨드랑이까지 구석구석 발라질 때쯤
    그의 뒤통수로 그림자는 슬적 다녀간다
    그러나 그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뗀다

     

    저물기 시작한 노을이 그의 머리를 툭 건드릴 때마다
    기억의 살점은 슬그머니 떠나갔고
    그에게서 아내와 자식들이 사라졌다
    더 이상 식대와 숙박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외양간에 암소 한 마리는 덕분에 살판이 났다

     

    그의 허리를
    꺼부정하게 길들이던 소주병 하나가 속이 다 털린 채
    언짢은 표정으로 세월의 가면을 쓰고 있다
    아내와 아주 헤어질 때 꼭 전하고 싶다던
    그 때 그 비밀스런 그의 말들은 절대
    아무에게도 전해질 일이 없을 것이다

     

    올해도
    바람은 노을과 어둠의 틈 사이를 뒤지고 있다
    콩깍지 안에서 콩알이 툭 튕겨져 나간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잡아뗀다

    (그림 : 박운섭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종규 - 의자  (0) 2021.06.28
    이병연 - 구멍 난 양말  (0) 2021.06.26
    신미나 - 커튼콜  (0) 2021.06.26
    이상길 - 한춘  (0) 2021.06.26
    강서일 - 꽃 선생  (0) 2021.06.24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