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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권 - 소가 나를 볼 때시(詩)/송진권 2021. 5. 22. 17:50
지그시 눈감은 소가 되새김질하다 말고 나를 볼 때
너풀거리는 비닐을 헤집으며 달이 축사를 비집고 들여다보는 때
소 둥근 입을 비집고 게침도 버글버글 나오는 때
왕겨 같은 꺼끌꺼끌한 별들이 쏟아져 구유에 빠질 때에
백열등에 뭔가 날아와 탁탁 날개 부딪치는 소리 들리는 때
하루살이 등에 쌀매미 보리매미 각다귀 무슨 무슨 나방들 다 모여드는 때
내 눈과 소의 그 크낙한 눈에 박꽃이 배길 때
칡넝쿨이거나 호박넝쿨 같은 것이 마구 엉겨 붙으며 휘감고는 나와 소를
한데 엮어서 내 한숨과 소의 한숨이 여름 저녁을 덥히는 때
내 눈동자에 배긴 소는 평안하고
소 눈동자에 배긴 나는 모처럼 마음이 둥글어져서
나는 박각시나방이 날아드는 박꽃을 오므리기도 하고
어릴 적에 소와 같이 간 데를 하나하나 더듬어 보기도 하는 때에
옴팡골 솔수펑 우무실 먹뱅이를 더듬어 보는 때에
중천에 높이 뜬 달이
그림자를 하나하나 둥글게 모으는 때
소는 소로
나는 나로 돌아와
(그림 : 이종구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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