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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권 - 가쟁이째시(詩)/송진권 2020. 2. 8. 22:00
혼곤한 꿈속으로
보리똥 달린 나뭇가지를 들고
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지요
너 줄라고 식전에 가서 가쟁이째 꺾어 온 거여
두었다가 혼자만 먹어
니가 며칠 앓느라구 밥두 못 먹구 있대서
새벽 댓바람에 꺾어 온 거라니께
가쟁이째 꺾어 왔다는 거요
제 것은 하나도 안 남기고
송두리째 모두 내줄 것 같은 그 말의 가지마다
하나둘 새콤한 보리똥이 다닥다닥 맺혀
흔들리는 거 같지요
열매가 제일 많이 달린 가지나
기중 실하고 빛깔 고운 데를 뚝 분질러서
제 속의 가장 고갱이 같은 마음을
가쟁이째 꺾어다 건네준 그이처럼
나는 내 마음 가쟁이째 뚝 분질러 누구에게
건네줄 수 있을까요
아무도 모르는 첫새벽에 일어나
꺾어다 줄 수나 있을까요(그림 : 이금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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