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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도현 - 만두집
    시(詩)/안도현 2021. 4. 8. 12:46

     

    세상 가득 은행잎이 흐득흐득 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늦가을이었다
    교복을 만두속같이 가방에 쑤셔넣고
    까까머리 나는 너를 보고 싶었다
    하얀 김이 왈칵 안경을 감싸는 만두집에
    그날도 너는 앉아 있었다

    통만두가 나올 때까지
    주머니 속 가랑잎 같은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무슨 대륙 냄새가 나는
    차를 몇 잔이고 마셨다
    가슴을 적시는 뜨거운 그 무엇이
    나를 지나가고 잔을 비울 때마다
    배꼽 큰 주전자를 힘겹게 들고 오던
    수학 시간에 공책에 수없이 그린
    너의 얼굴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귀 밑에 밤알만한 검은 점이 있는
    만두집 아저씨 중국 사람과
    웃으면 덧니가 처녀 같은
    만두집 아줌마 조선 사람사이에
    태어난 화교학교에 다닌다는 그 딸
    너는 계산대 앞에 여우같이 앉아 있었다
    한 번도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고
    미운 단발머리 너는
    창밖 은행잎 지는 것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날 만두값도 내지 않고 나와버렸다
    네가 뒤쫓아오기를 바라면서
    왜 그냥 가느냐고 이대로는 못 간다고
    꼭 그 말이라도 듣고 싶었는데
    너는 지금까지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그 이후로 네가 보고 싶어도
    매일 가던 너의 만두집에 갈 수 없었다

    (그림 : 한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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