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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도현 - 호미
    시(詩)/안도현 2020. 10. 15. 17:51

     

    호미 한자루를 사면서 농업에 대한 지식을 장악했다고

    각한 적이 있었다

     

    안쪽으로 휘어져 바깥쪽으로 뻗지는 못하고

    안쪽으로만 날을 세우고

     

    서너평을 나는 농사라고

    호미는 땅에 콕콕 점을 찍으며 살았다고 말했다

     

    불이 호미를 구부렸다는 걸 나는 당최 알지 못했다

    나는 호미 자루를 잡고 세상을 깊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너를 대지의 허벅지를 물어뜯거나 물길의 방향를 틀어

    려세우는 일에 종사하지 못했다

    그것은 호미도 나도 가금 외로웠다는 뜻도 된다

    다만 한철 상추밭이 푸르렀다는 것,

    부추꽃이 오종종했다는 것은 오래 기억해둘 일이다

     

    호미는 불에 달구어질 때부터 자신을 녹이거나 오그려

    손하게 내면을 다스렸을 것이다

    날 끝으로 더이상 뻗어나가지 않으려고 간신히 참으면서

     

    서리 내린 파밭에서 대파가 고개를 꺾는 입동 무렵

     

    이 구부정한 도구로 못된 풀들의 정강이를 후려치고

    아이들을 키운 여자들이 있다

    헛간 시렁에 얹힌 호미처럼 허리 구부리고 밥을 먹는

    (그림 : 강연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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