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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종 - 저녁바람의 노래시(詩)/고재종 2021. 2. 9. 09:22
바람이 쓰다듬는 저물녘의 노래는
시오리 장에 갔다가 뉘엿뉘엿 돌아오던
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처럼 지극하네
불콰해진 강물, 반짝이는 고요를 깨며
누군가를 몰래 호출하는 뻐꾸기
이때쯤 바람은 수수밭 가를 내내 서성거렸지
늘 굽은 등을 보이며 숨어드는
쓸쓸한 꿈들과
짐짓 보람도 없이 저미는 시간의 갈기조차
가만가만 다독이던 바람의 노래
노을빛, 휘파람소리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은 능선으로 굽이친다네
이제는 노래로도 모자라 노래도 버리고
너무 멀어져서
명치끝만 타는 사람의
길목 어둡지 않게
하나 둘 별들을 송출하는 분꽃 나팔들
내 늦은 귀가를 조율하던 어머니의 마루에서
오늘은 무엇을 넣고 빼서
처마 끝에 그리움의 풍경을 내다 걸까
(그림 : 고찬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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