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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배 - 그믐치
    시(詩)/시(詩) 2021. 2. 8. 06:28

     

    설날 새 옷 하나 얻어 입으라고

    싸리 눈은 빗속을 뚫고 내린다

    떡국은 이때 먹어야 제맛이고

    웃자란 보리는 자근자근 밟아야 한다고

    목련 가지 사이로 퍼붓는다

     

    엄니는 목포로 설 장 가시고

    나는 돼지 뒷다리가 펄펄 끓는 아궁이에

    솔가지 몇 개를 집어넣었다

    시뻘건 불길이 깊숙이 빨려 들어가

    굴뚝을 타고 솟아오르면

    초가지붕이 나지막이 엎드려 몸을 녹인다

     

    섣달그믐,

    올해도 그믐치는 내 옆구리를 시리게 하고

    뒤엉킨 기억에서 벗어나라 한다

    설마 했던 사람이 뭍으로 가겠다고

    차가운 눈빛으로 내 영혼을 찢어버리던 날

    그를 잡을 용기가 없어 됫병 소주를 들이켜며

    빗나간 세월만 잡고 살았다

     

    오래전 일을 그믐치는 잊지 않고 있나 보다

    가마솥은 펄펄 끓고, 나는 막걸리 한잔을 따르며

    엄니가 사 오실 두툼한 잠바를 기다린다

    밖은 하얀 눈꽃 세상이 되어가는데...

    (그림 : 김종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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