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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새 옷 하나 얻어 입으라고
싸리 눈은 빗속을 뚫고 내린다
떡국은 이때 먹어야 제맛이고
웃자란 보리는 자근자근 밟아야 한다고
목련 가지 사이로 퍼붓는다
엄니는 목포로 설 장 가시고
나는 돼지 뒷다리가 펄펄 끓는 아궁이에
솔가지 몇 개를 집어넣었다
시뻘건 불길이 깊숙이 빨려 들어가
굴뚝을 타고 솟아오르면
초가지붕이 나지막이 엎드려 몸을 녹인다
섣달그믐,
올해도 그믐치는 내 옆구리를 시리게 하고
뒤엉킨 기억에서 벗어나라 한다
설마 했던 사람이 뭍으로 가겠다고
차가운 눈빛으로 내 영혼을 찢어버리던 날
그를 잡을 용기가 없어 됫병 소주를 들이켜며
빗나간 세월만 잡고 살았다
오래전 일을 그믐치는 잊지 않고 있나 보다
가마솥은 펄펄 끓고, 나는 막걸리 한잔을 따르며
엄니가 사 오실 두툼한 잠바를 기다린다
밖은 하얀 눈꽃 세상이 되어가는데...
(그림 : 김종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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