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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영 - 졸업사진시(詩)/시(詩) 2021. 2. 6. 13:07
사진이 도착했다
낯선 여자와 내가 어색하게 마주 본다
안녕하다는 듯이 웃고 있다
명랑하다는 듯이 머리 손질을 하고
가장 평온한 날씨가 되어 바깥을 보고 있다
홀로, 액자 안쪽에 이주한 걸까
눈썹은 대칭을 맞추지 못했어도 정성껏 그려져 있고 텅 빈 가르마도 조금은 들떠있다
후박나무 새움 같은 속눈썹이 이쪽의 생을 필사하려는 듯
먹물을 잔뜩 머금고 있다
환한 조명 앞에서 늦가을처럼 앉아있는 여자
겨우 입을 떼며 사진사에게 몇 마디 건넨다
웃어야 가족들이 좋아해서…
자꾸 표정이 굳어가요
잘 나오면 확대해서 간직하려고…
김치-치-즈 하세요
온화한 얼굴 하나 남기려는데
이미 한마음이 다른 마음에게 들켜버렸다
찰칵, 남은 생이 인화된다
어딘가에 찍혀 넘어간
(그림 : 황숙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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