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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진 - 멸치의 꿈시(詩)/시(詩) 2021. 1. 28. 14:29
이 바닥에서 나는
잔챙이라 불린다
한 때는
반짝이는 물결무늬 옷을 해 입고
힘차게 파도를 넘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덩치가 산 만 한 고래를 보고 난 뒤부터 이내 기가 죽었다
그나마
고만고만한 동류들이 있어 견디고 있는 중이다
물속 세상에서
거센 해류를 거슬러 오르는 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해 내는 일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온몸의 근육을 키워
뼈대 있는 존재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기를
그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물속에서
스스로 소실점이 되는 생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끝내
고래가 되지 못하는 내가
살아남는 법은
속으로 스며들어
깊은 맛을 내는 종족으로
이름을 얻는 것이다
(그림 : 이한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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