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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명순 - 서문시장 수제빗집시(詩)/시(詩) 2021. 1. 27. 07:33
빗물 질펀한 시장을 가로질러 노점에 닿는다 양은 솥 가득 수제비가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연신 코를 벌렁거리며 게딱지 손으로 쉼 없이 수제비를 뜯어내는 그녀의 저 재바른 손놀림, 겨울비 내렸고 생의 절반이 도망치듯 세상 밖으로 뚝 떨어져 나간 남편과 어린 자식 삼 남매와 빚덩이만 밀가루 반죽처럼 게딱지 손끝에 매달려 있다
팔자라 말하기엔 아직도 잘라버리지 못한 것들 손끝에서 댕강댕강 양은 솥 안으로 끊임없이 밀어 넣어야 살아가는 삶, 밀가루 반죽은 ‘뚝 뚝’ 그녀를 잘라 먹는다 숨을 쉬는 동안 끝나지 않을 눈물을 밀랍 하는 일 찜통에 담아 두었던 밀가루 반죽 한 덩이를 들고서 밀려 나온 생의 한 가운데 모든 신경을 손끝에 모아 쪼가리 쪼가리 양은 솥 안으로 던져 넣는 수천 개의 게딱지(그림 : 김제정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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