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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과 바다가
내외처럼 낡아가는 동네
언덕 꼭대기 집어등 닮은 쪽창들
간밤 수다를 토해 놓으면
아침 바다 윤슬이 노래로 다독인다
어깨가 내려앉은 논골담
고샅엔 수국이 한창이고
폐가 담쟁이는
마당을 지나 지붕까지 힘줄을 엮는다
살아 푸른 건 거기까지
나폴리도 여기선 다방을 차리고
극장은 종일 필름을 돌려도
'돌아온원더할매' 혼자서 웃고 있다
모퉁이 돌면 고래가 쏟아지고
허공이 따르는 막걸리에 목을 축인다
오징어는 담벼락에서 빨래처럼 말라가고
묵호야 놀자 했더니 용팔아 이놈쉐끼
어매 빗자루가 날아온다
페인트 칠 벗겨진 벽화들마다
마음이 펄럭인다
묵묵히 기다림의 자세로 눈 먼
저무는 등대에 기대 바다를 보면
떠난 애인은 다 묵호여서
눈 감아도 묵호만 보이고
그 이름 부르면 비릿한 멀미
다시는 못 갈 것 같은 묵호
(그림 : 박양예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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