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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 - 구두에게 물어보네시(詩)/김재진 2020. 11. 23. 17:52
한 발 건너 또 나무가 우수수
이파리를 흩날이고 있었지.
기다리던 차도 끊긴
길 위에 앉아 너는 새까만 밤하늘을
골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어.
별들이 열어놓은 창 밖으로
꽃 피듯 누군가 노래 부르는 밤이었지.
어둠이 펼쳐놓은 악보 위로 또 누가 그려넣은 시간들이
얼굴 내민 떡잎처럼 쑥쑥 자라나고 있었어.
내게 불협의 화음을 새겨넣던 너는
비어 있는 오선지야.
눈감고 나무가 뿌려놓은 음표들을 살펴봐.
바스락거리며 길 위를 굴러가는
저 계절의 수레들을 따라가봐.
고단한 음계 위로 걸어가고 있는
구두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란 말이지.
시간은 가고, 세월도 갈 거야.
우리가 걸을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나도 몰라.
사실은 아무 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어.
눈물인지 기쁨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 다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어
또 알면 뭐해. 그냥 그렇게 떠다니면 좋을 걸 뭐.
단양, 영주, 봉화,
닭실마을 지나 청량사 가면
그 어디쯤 있을까 나도 몰라.
서둘러 옛날을 지우는 지우개라도 있다면 모를까.
눈감으면 눈앞이 온통 별밭으로 변하는
그 귀퉁이 어디에다 너를 꼭꼭 상감시켜놓을 거야.
(그림 : 한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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