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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 달그림자에 사는 일시(詩)/시(詩) 2020. 9. 11. 20:28
당신이 그랬듯이 꽃이 다 지고서야 봄을 알았지
싸리비로 꽃잎을 쓸면 겨우 지운 이름에 다시 얼룩이 지고
누가 오는지도 모른 채 하루내 기다리는 사람처럼
무릎을 안고 가만가만, 가만히 눈썹을 뜯어 하늘에 붙이지
그러면 쇠를 부리는 대장장이가 어디 있어 꽃니 자국 같은 섬광을 비춰주지
당신이 그랬듯이 봄은 다시 오지 않을 테지만 녹슨 철문 닫듯 그래도, 밤이 오면
나는 시치미 떼듯 번듯한 표정으로 초승달을 따다 이마에 붙이겠네
뒷짐을 진 채 궁리도 없이 안녕을 들여다보겠네
마음이 묶여 다리가 없는 나는 구름 너머의 빗소리를
약으로 들으며 오늘도 빚지는 일만 늘어가겠지만
(그림 : 백중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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