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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상열 - 미도다방
    시(詩)/시(詩) 2020. 9. 9. 22:58

     

    종로二가 미도다방에 가면
    鄭仁淑 여사가 햇살을 쓸어 모은다
    어떤 햇살은 가지 끝에 걸려 있고
    어떤 햇살은 벼랑 끝에 몰려 있고
    어떤 햇살은 서릿발에 앉아 있다
    정 여사의 치맛자락은
    엷은 햇살도 알뜰히 쓸어 모은다
    햇살은 햇살끼리 모여 앉아
    도란도란 무슨 얘기를 나눈다
    꽃 시절 나비 이야기도 하고
    장마철에 꺾인 상처 이야기도 하고
    익어가는 가을 열매 이야기도 하고
    가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도
    추억은 가슴에 훈장을 달아준다
    종로二가 진골목 미도다방에 가면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 잔 값의 추억을 판다
    가끔 정 여사도 끼어들지만
    그들은 그들끼리 주고받으면서
    한 시대의 시간 벌이를 하고 있다

    미도다방은 ‘아름다운 도시 속의 다방(美都)’이라는 뜻이다. 대구 진골목에 자리 잡고 있다. 진골목은 긴 골목의 경상도 사투리다. 다방은 1982년 문을 연 이후 대구·경북 지역의 문인과 화가, 정치인들의 명소가 됐다. 10년만인 1992년 진골목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3년 다방이 있던 건물이 매각되면서 진골목 안쪽,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이인성 화백은 이곳 미도다방에서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고, 소설가 김원일은 새로운 작품 구상에 매달렸다. 단골이었던 전상열 시인은 타계 직전에 ‘미도다방’이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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