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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양파망에 양파들이 비좁게 서 있네
어둠을 겹겹이 품은 채
산꼭대기까지 차곡차곡 들어찬 집
우두커니 지붕 위 하얀 낮달을 바라보네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 인연의
틈과 틈 사이
몸을 움츠리고 간신히 빠져나가 골목을 돌면 나타나던
또 다른 골목과 골목이
매운 눈물을 쏟아내던 오후의 그 집
후덥지근한 바람이 대못에 걸려 흔들리던
벽마다 대못이 박혀 있는 이상한
집
집
집들
뿌리가 없는 집집마다 개들은 사정없이 짖어대고
엄마가 준 양파는 손가락이 아리도록 까고 또 까도
속없는 꿈
가난한 껍질이 쌓여가는 동안
개미들만 바쁘게 붉은 벽돌담을 타고 오르는 이상한 집
쓸쓸한 기억이 일찍 끝나버리지 않도록
조용조용 어둠의 세간살이를 늘려놓고 가는
집
집
집
둥근 집들(그림 : 신경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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