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윤호 - 정선에게시(詩)/전윤호 2020. 8. 24. 09:03
화암리 벼랑인 양 버티는
너를 좋아했지
마음 한 번 받지 못한
짝사랑이었어
가문 여름의 옥수수 밭처럼
매련없이 울다가
아무도 없는 역에서
밤기차 타고 떠났지
굴이 무너지고
철교가 끊어졌어
밀려난 것들끼리 거품이나 흘리는 하류에서
늘 입석으로 살았어
빈자리가 생겨도 앉지 않았지
언제든 돌아가야 하니까
가슴속엔 구멍이 생기고
점점 커졌어
한 방울 한 방울 그리움이 떨어져
종유석이 된다면
몇 억 년을 건너야 입구를 찾을까
오래 참은 아라리처럼
이제 나 돌아가려네
길은 흐리고
다른 우주가 머지않으니
바퀴들이 삐걱이며 비행기재 넘을 때
기어코 안개는 비가 되겠지
더는 오지 말라고
입술 터진 강물이 막아서고
나 따위 잊는 지 오래라고
좋은 사람 만나 잘산다 해도
나는 기필코 가네 이 한 목숨
함백산 만항재 주목으로 남고 싶다네
화암리: 기암절벽으로 유명한 정선 화암면 마을
비행기재: 평창에서 정선 넘어가는 험한 고개
(그림 : 조규석 화백)
'시(詩) > 전윤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윤호 - 샘 (0) 2022.07.03 전윤호 - 서른아홉 (0) 2020.08.26 전윤호 - 단단함에 대하여 (0) 2020.08.21 전윤호 - 춘천역 (0) 2020.08.17 전윤호 - 역전 (0) 2019.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