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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이라 말했지만
너 또한 너 때문이라 했다
맞지 않은 말이지만 맞는 말이기도 했다
때로 과도한 반성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해서
날아가는 새에게도 허허로이 손 흔들어보는 아침이다
우린 살아있을까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너에게 비가 오고
내게도 비가 내린다면, 구름이 지나간다면
식어가는 차를 마저 마시며
남은 몇 개의 잎사귀에도 가만한 눈빛을 줄 일이다
그러해야 하리라 생각도 해보지만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도 세상에 얼마든지 있어
사랑을 핑계로 삼는 일은
비를 구름을 저 풀잎들을 미안케 하는 일이므로
굳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왔다, 스쳐갔다, 지나갔다 믿는 것뿐이다
부질없으나
그 부질없으므로 식은 찻잔에도 너는 있고
잎사귀에 맺힌 빗방울에도 너는 있다고 믿으며
처음 같은 눈길을 주어보는 것이다
(그림 : 설종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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