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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 - 오래된 연가시(詩)/이화은 2020. 8. 1. 17:37
사랑하는 일에 목숨 걸겠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당신 죽으면 따라 죽겠다고 언약한 적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은반지 같아서, 넉잠 자고 난 누에 같아서
언약한 그 손가락 자꾸 아팠습니다
그 사랑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은반지 빼서 돌려주고 나니 왼손 약지에 오래오래
그늘이 남았습니다
그 그늘 닦아도 빛나지 않았습니다
강가에 앉아 빗줄기가 만드는 파문을 보며
그 둥근 물무늬가 그늘인 줄 알았습니다
맞지 않아 돌려준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다 자란 누에처럼 굵어진 빗줄기
서럽게 웅크린 내 왼쪽 날개 후려치고 뛰어갑니다
(그림 : 박혜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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