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하 - 눈물이 구부러지면 나도 구부러져요시(詩)/시(詩) 2020. 6. 22. 17:51
메밀이 물기를 털 때 메밀은 시끄럽게 떠들어요 이곳은 메밀꽃밭이에요 메밀꽃을 사람으로
바꿀 순 없지만 구름으론 바꿀 순 있어요 바꾸고 나면 마음이 아파지죠 여러 명의 구름 안에
는 내가 찾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구름 위는 걷기 좋아요 걷다보면 그를 만나는 과정이 생기
며 여태 이렇게 살아왔어요 걷다보면 도로도 나오고 고라니도 나오고 문제도 발생하지요 매
일 밤 열두시에 발생하지요
오늘은 부디 메밀꽃을 그 사람으로 바꿔 주세요, 라고 말하게 되는 문제요
메밀꽃을 손에 넣는 일은
며칠 뒤에 반드시 후회를 불러옵니다
꽃이란 평범한 것이니까요
그 사람은 사 년째 시들지 않았습니다
섬에 없을 뿐이지 사 년째 모래알 같습니다
새벽을 지나가겠다고 한 적 없는데
시간이 새벽을 지나갑니다
눈물이 구부러져서 나도 허리를 구부립니다
보고 싶다고 말하면 볼 수 있는 게
꽃과 해와 달입니다 술 한잔이 생각납니다
사랑하고 싶은 잘못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나는 못됐습니다
물기는 물방울이 되어 구를 수 있습니다
그걸 눈물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이별은 풀밭처럼 생겼습니다
꽃이 바닥난 것처럼 말입니다(그림 : 강정희 화백)
'시(詩) >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은숙 - 시간을 설거지하다 (0) 2020.06.25 김지란 - 사리 (0) 2020.06.24 송종규 - 나무의 주석 (0) 2020.06.22 서윤후 - 우리가 나눠 가진 촛불의 쓰임이 다를지라도 (0) 2020.06.22 이영옥 - 오필리아 (0) 2020.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