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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자 - 여름을 흥정하다시(詩)/시(詩) 2020. 5. 28. 18:25
여름에는 해변도 젊어진다
통통 튀는 비치볼과 비키니의 웃음을 모래밭에 전시하고
즐비한 비치파라솔은 그늘을 판다
한철을 위해 몇 개의 계절을 소비한 바다
이때쯤 잘 여문 파도가 흰 꽃을 피운다
제철인 여름바다
싱싱한 소라 멍게 해삼은 소품이다
축제를 위해 달아오른 태양을 조명처럼 달아두고
좌판의 상인들은 가지런히 수평선을 썰어 접시에 담는다
축제 분위기는 날씨가 맡았다
쾌청한 기분에 금이 가지 않도록 바람은 구름을 애드벌룬처럼 띄운다
빛에 감전된 사람들은
임대한 여름의 뒷주머니에 웃돈을 찔러주고
출렁거리는 파도는 추임새를 넣는다
장전된 총알이 과녁을 찾는 여름밤의 흥정
들끓는 거래 명세서가 여기저기 낭비된다
밤늦도록 청춘들의 연애 밀도가 높아지고
해변은 그들의 젊음을 발자국으로 기록한다
빛에 감전된 사랑이 떠나면 비치파라솔이 접히고
여름은 폐장이다
다시 거래를 하기 위해
바다는 몇 개의 계절을 공란으로 남겨둔다
(그림 : 정병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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