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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소가 종일 한 일은
빈 밭에 나가
느릿한 밑줄을 친 일밖엔 없다
돌아와서는 커다랗고 둥근 돌의 구멍에 묶여
봄볕이나 되새김질하고 있다
구멍 뚫린 저 돌은
마침표 같다
마침표는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 기다리는 기호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돌의 눈 같은 구멍에 묶여 있는 소
그러고 보니 세상 모든 눈들은
다 마침표라는 생각이 든다
검은 허방이다
소가 돌에 묶여 있다
아니, 둥글고 투명한 허방에 묶여 있다
수직의 밑줄을 그으며
새순들이 뻗어나가는 저기 저 허공
포르르 새가 날아간다
작고 여린 마침표 같다
(그림 : 장정근 화백)
Royal Philharmonic Orch - Unchained Mel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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