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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 골목 사람들시(詩)/이상국 2020. 4. 12. 12:21
나는 이 골목에 대하여 아무런 이해(利害)가 없다
그래도 골목은 늘 나를 받아준다
삼계탕집 주인은 요새 앞머리를 노랗게 염색했다
나이 먹어가지고 싱겁긴
그런다고 장사가 더 잘되나
아들이 시청 다니는 감나무집 아저씨
이번에 과장 됐다고 한 말 또 한다
왕년에 과장 한번 안해본 사람…… 그러다가
나는 또 맞장구를 친다
세탁소 주인여자는
세탁기 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나에게 들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피차 미안한 일이다
바지를 너무 댕공하게 줄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골목이 나에 대하여 뭐라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 골목 말고 달리 갈 데도 없다
지난밤엔 이층집 퇴직 경찰관의 새 차를 누가 또 긁었다고
옥상에 잠복하겠단다
나는 속으로 직업은 못 속인다면서도
이왕이면 내 차도 봐주었으면 한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는 몰라도
어떻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고
누군가는 이 골목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림 : 곽석경 화백)
Lin Hai - Deep in 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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