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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정인 - 눈물의 몇 가지 성분
    시(詩)/시(詩) 2020. 3. 11. 17:52

     

    울긋불긋 웃는 얼굴이 가면을 쳐드는 일이었다 만발한 가면들 사이
    내 얼굴을 가만히 내렸다 풀꽃처럼 흔들리며 눈물 한 점 피어올랐다

    씨앗 하나 움트는 정도 사소한 균열, 그것은 내부 어딘가 금가는 것에서 시작돼
    막장을 빠져나가는 탄차처럼 덜컹거린다, 생애 한 두 번은
    전기충격을 가한 것처럼 격렬하게 덜컥거린다

    목울대가 꿀꺽, 파랑 물고기를 삼킨다 수위가 넘친다 미간이 흐려지고
    눈동자에 분홍 실뿌리 번진다 눈물 핀다 아슬아슬 경계에 걸쳐진 투명한
    꽃, 출력된다 파랑주의보 미간을 지난다 수평선이 펄럭인다 바다를 엎지른
    너는 고개를 묻는다 무릎이 수통을 받는다 물고기가 수통벽을 텅텅 친다
    수통에서 탱크로 탱크에서 저수지로 모든 수로는 바다로! 바다로 간 물고기는
    창이 많은 기선이 되어 수평선 너머 멀어져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다를 품었다 저마다, 바람을 풀어놓은 초원을 품었다
    검게 빛나는 석탄층을 품었다 사하라를 품었다 그러므로 바람, 석탄, 모래, 기타
    내부자원에 따라 눈물의 유출경로와 성분과 체위는 다르다 피카소의
    기하학적으로 우는 여자에게서는 잿빛 게르니카가 흘러내렸다

    당신에게도 눈물의 금속성이 지나간, 붉게 긁힌 자리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곳에서 생의 이삿짐은 다시 꾸려졌을 것이다 새로 옮긴 집
    뻑뻑한 창틀을 두드려 열고 껌벅이는 형광등을 내렸을 것이다 간이렌지를 찾아
    푸른 불꽃 위에 찻물을 올렸을 것이다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아……
    창밖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그림 : 채정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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