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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엄마를 가졌었죠
자니?
등 너머에서 들리던 아득한 말
말 이전의 망설임이 돌아누운 내 어깨를
가만가만 어루만지고 있던 어떤 밤
어깨를 돌리기만 하면 품을 파고 들 수 있는
옆 사람 숨소릴 헬 수도 있는
그런 단칸방
나는 더욱 웅크려 이불 속에 얼굴을 묻었었죠
소리 죽인 울음을 이윽히 기다리던 엄마가
다시 묻던 말
자?
안 자, 대답하고 돌아눕기만 하면 되는
나의 등 뒤에 엄마가 있었어요
안 자, 등 너머로 대답 대신 건네주는 일을
아직 하지 못했는데
나는 그만 등 너머 빈방을 가진 사람
해안을 적시며 헤적이는 곡우 무렵 밤물결 같은
엄마라는 말 참 좋아요
나는 한 때, 엄마라는 바다와 육지를 가진 적 있죠
엄마라는 지구를 가진 적 있어요
(그림 : 김길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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