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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권 - 아주까리 등불시(詩)/송진권 2020. 2. 8. 21:43
이젠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논둑에 앉아서
궐련 말아 피던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슬픈 얘기도 눈물 바람 안 하고 할 즈음이 되어서
후우 한숨 몰아쉬던 그때의 아버지 속을
조금은 알게도 되어서
오디가 많이 달린 뽕나무 가지를
지게 작대기 뻗어 내 쪽으로 휘어주던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입가며 손에 묻은 먹빛 오딧물을
미지근한 논물에 닦아주던 아버지 나이가 되어서
마흔이 넘어서
씀바귀 맛을 알 즈음이 되어서
피리를 불어주마 우지 마라 아가야 하던
옛 노래의 맛도 알 즈음이 되어서
씀바귀의 그 쌉싸름한 맛을 알게도 되어서
산 너머 아주까리 등불을 따라
하는 데서 눈시울 누를 줄도 알아서
(그림 : 김대섭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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