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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 동백 그늘시(詩)/이병률 2020. 2. 6. 13:25
어질어질 떨어지는 저 꽃잎들은 미안해서도 떨어지고
힘이 없어서도 떨어질터인데
지나가는 아이들 동백나무 그늘로 들어가 동백을 따네
어디 달아놓을 데가 있을라나
도둑처럼 아이들 동백을 따네
아이들 양 손바닥 가득 열씩 스물씩 딴 꽃들을 담아
골목 끝으로 뛰어가는 길 위에
파르랑파르랑 동백꽃잎들 떨어지고
그 꽃들 밟지 않으려 나 가만가만 동백을 줍네
동백을 머리에 가슴에 얹고 물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껴안을수록 내 욕심이 아니던 지난 저녁을 생각하는 동안
동백꽃잎 타는 자리 더워지더니 차오르더니
이내 나도 팽창하여 사방에 살점들을 흩날리네
햇빛이 기우는 냄새가 이리 진할라나
손으로 탄식을 후려치는 힘이 이리 매울라나
차고 허전한 마음을 살점이 덮네
동백나무 아래 나를 붉게 차려놓는 동안
(그림 : 백중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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