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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일하는 곳 멀리 자전거를 세우고
그대를 훔쳐보는 일처럼
반쪽의 반쪽밖에 안 되는 나는
비겁이라는 꽃 이파리 머리에 꽂고
시시덕시시덕 오늘도 얼마나 비겁했던가요
당신이 자전거 쪽으로 다가와
우산을 버리고 돌아설 때에도
나는 비겁을 뒤집어쓰고 몸을 돌려 서 있습니다
그 자리에 당신 그늘이 생깁니다
천 년에 한 번 사랑을 해서 그런 거라고
그게 아니라면 머릿속에 그토록 많은 꽃술이 매달릴 수가
천 년에 한 번 죽게 될 테니 그렇게 된 거라고
아니면 그토록 한 사람의 독으로 서서히 죽어갈 수야
혼자인 것은 비겁하지 않은데
당신을 훔쳐보는 일은
당신 하는 일 앞에서 비겁한 일이어서
십 년을 백 년처럼
당신을 보러 이곳에 오고
당신은 어느 바다로 흘러가지도 않으며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주차할 수 없는 구역에
단독 주차하는 나를 위해
마냥 봄처럼 십 년을 당신이 있습니다
(그림 : 안기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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