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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 한 그릇의 밥시(詩)/시(詩) 2020. 1. 31. 11:32
반은 몸으로 하고 나머지 반은
무량한 생각으로 일구는 것이 농사다
그러니까,
오뉴월 땀으로 감자를 캐는 동안
머리맡으로 울고 가는 까치 소리에
반갑게 맞고 싶은 누군가를 떠올리던 호미질처럼
몸의 수고와 생각이 반반인,
풀을 뽑으면서 깊은 근심을 들어내고
비닐의 씌우면서 태풍 걱정을 덮었을 것이다
농약을 치며 대출받은 악성 부채를 제할 방법과
논두렁을 깎으며 이웃과의 날선 모서리를 깎았을 것이다
순한 웃음은 이자처럼 얹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쌀이고, 호박이고, 감자다
그러니 어찌 밥 한 그릇에 배만 부르겠는가
생각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젊은 노동가치설과, 자본론만 가지고 어디 농사가 되겠는가
경제론만 가지고 무슨 손익계산서가 나오겠는가
이러한 밥을 먹는 사람들이
옥수수처럼 살림이 커가고 감자보다 속이 맑아지지 않겠는가
청무를 닮아 푸릇한 마음이 둥글어지고
고추보다 매운 세상을 거듭 생각하지 않겠는가
배추처럼 속이 꽉꽉 차오르지 않을 수가 있겟는가
그런 생각들을 우려낸 국 한 그릇에
아내의 따뜻한 생각이 덧붙여진 한 그릇의 밥
밥을 잘 먹어야 된다
허튼 얘기가 아니다
(그림 : 변응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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