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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진은 - 중년
    시(詩)/시(詩) 2019. 12. 30. 12:35

     

    열쇠를 돌리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문득 등을 끄지 않은 채 차에서 내린 간밤의 기억이

    몰려온다 낭패, 눈꺼풀도 내리지 않고

    정신없이 꿈속을 헤매는 사이 핏기를 잃어버린 내 눈알

    어떤 것에 뒤집혀 긴 밤 긴 생을

    후들거리는 다리와 텅 비어가는 머리도 모른 채

    내 헤드라이트는 발광했을 것이다

    무언가에 홀려 뚫어지게 바라보는 동안

    계절은 가고 주름살은 깊어졌고 흰 머리는

    늘어났다 어디로 가는가 철철 넘치던 팔뚝의 푸른 힘줄은

    전류처럼 터져 나오던 생기, 머릿속을 흐르던 생각은

    어느 허공으로 날아가버리고

    까칠하고 초췌해진 몸뚱이로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는가

    어저께까지도 명품이라고 믿었는데

    눈 한번 들었다 내려놓는 사이

    어떤 것에 취해 이렇게 떠밀려온

    두드려도 가없는 무슨 소리만 내보내고 있는

    중년을 일으키려 저기, 정비기사가 달려온다

    또 하나의 몸이 부끄러운 듯 마중하러 간다

    (그림 : 이운갑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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