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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경 - 강구의 밤시(詩)/시(詩) 2019. 12. 26. 10:12
통통거렸던 하루가 침묵 속으로 오그라든다
방파제 옆, 짭쪼름한 동해의 살결을 물고
해종일 물구나무 서 있던 빨래집게의 목구멍으로
바람이 들면
꽉 다물었던 입술이 가벼워진다
낡은 이력을 삼키자 찡그렸던 미간이 풀리고
등 떠밀던 파도가 정수리를 디밀고 만삭의 수다를 게워 놓는 밤
혓바닥 아래 쪼그리고 앉았던 자음과 모음이
앉았다 기울었다 누웠다를 반복한다
오늘의 어둠이 차지게 익는 순간이다
네온의 살갗을 갉아먹으려던 육풍마저 등 돌려 누운 시각
납작 엎드렸던 기억이 어깨를 추스르며
시력을 잃어 가는 외등 곁에서
비릿한 어둠을 껴안는다
믿을 수 없는 기억력으로도 환해서
파도의 상투적인 거짓말을 믿어 주기로 한다
통통거렸던 하루가 자정의 이마 위에 닻을 내린다(그림 : 김상용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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