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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라 - 이런 기억도 사랑이라네
    시(詩)/이사라 2019. 10. 11. 08:59

     

    다시 봄날이 지나고 흰 눈도 녹고

    풀이 나무가 되기도 했던 기적 같은 시간들도 떠나가고

    그럴 즈음이었다네

     

    담장을 쓰다듬는 햇살 속

    소곤거리며 기어오르는 넝쿨손을 기억하며

    낡은 집은 더 낡아갔다네

     

    나의 벽이 드러나는 집 한 채

    오똑 벗은 시간의 몸을

    나는 모르는 체했다네

     

    벽이 흐물흐물해질 무렵

    떠나가는 시간들이 드리우는

    음영이 긴 철골 기둥 하나가

    슬그머니 나의 허리께를 뚫고 들어와

    빈 몸에 내벽 세우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심 딴청부렸다네

     

    돌아올 시간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시 봄날이 회생하고

    또다시 흰 눈이 쌓이고

    내벽과 나의 벽이 사랑을 나누어 가진 것을

    기억할 수 있다네

     

    그가 나를 밀어내기 전까지

    나의 몸이 거울 밖으로 쏟아져 한 줌 파편들이 될 때까지

    함께한 날들이 사랑이었다고

    기억할 수 있다네

     

    나 또한 우연하게라도 우리들이 지녔던 사랑의 힘을

    부인하지 않으려 하네

    녹슨 못들이 남기고 떠난 녹슨 무늬의 추억이었지만

    언제라도 나를 쫑긋 세울 수 있어

     

    조금 더 조금만 더

    어느 날 촛농처럼 흘러내릴 때까지

    이런 기억도 사랑이라네 

    (그림 : 박종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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