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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라 - 밥의 힘시(詩)/이사라 2019. 10. 11. 09:02
가을이 가고 겨울 오는 길이 서늘합니다
며칠 동안 그 길에서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한 마음과 한 마음 사이를 무사히 지나기가 어렵다고
몸에게 말해주는
신(神) 하나가 그렇게 서늘한 기운으로 지나갑니다
신열로 오르내리는 세상이
어쩌면 몸속에 남은 마지막 힘인 듯 제게 느껴집니다
계속 그 길 따라 걸어가면
집들이 서릿발 꼿꼿한 창문을 달고
겨울은 그렇게 얼어가겠지만
창문 너머 저기 저 부엌의
밥솥 안에서는
둥근 맨얼굴들이 송글송글 땀을 흘리고 있을 테지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한고비 넘긴 몸이
밥솥 안의 끈기처럼 밥의 힘을 믿는 사람과 함께
더 둥글게
또 한세상을 지나갈 것입니다
(그림 : 이미경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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