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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짙어지자
화살표처럼 생긴 누런 느티나무 잎들이
땅바닥으로 우수수, 내려왔다
눈여겨보면
모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를 쫓아가면
봄과 여름 내내 바람에게 세차게 흔들려
방향감각과 함께 평정심을 잃은 잎들이
제각각 벌이는 시위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다
초겨울바람 한 줄기가
매서운 속도로 나뭇잎들의 시위를 쓸어 가면
멀거니 저 홀로 우뚝 선
느티나무는 내리치는 눈송이를 맨몸뚱이로 막아내며
새판을 짤 궁리에 빠진다
그리하여 새봄이 오면
푸릇푸릇한 이파리를 다시 매달고
세상살이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각오를 단단히 다질 것이다
(그림 : 김기홍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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