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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규관 - 싸움의 끝
    시(詩)/시(詩) 2019. 8. 29. 19:00

     

     

    내게 싸움 중의 싸움이라면

    하굣길 동네 여자애들 괴롭힌다고, 아랫마을 형에게

    겁 없이 대든 일이다

    구석에 몰려 되게 맞았고, 나는 그를

    한 대도 때리지 못한 채 코피를 흘리며

    동네 뒷산을 혼자 넘어와서

    강줄기를 바라봤었다

    지금도 싸움을 멈추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소한 싸움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게 맞다

    모든 일에 이해관계가 생기고

    힘의 우열을 남몰래 재보게 되고

    하물며 아내하고 싸울 때도

    작은 방에 처박혀 책을 읽는 척하는

    새끼들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이래서는 어떤 싸움도 더러워진다

    전리품을 얻기 위해 싸우고

    자리를 바꿔 앉기 위해 싸우고

    싸움 이후를 먼저 생각하며 싸우는 일은

    그래서 역겨운 것이다

    기쁨도 설움도 내 것으로 하는 싸움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정말 싸움을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제는 싸움 자체가 두려워졌다 싸움 이후에

    열세 살 적 강물이 보이지 않는다

    (그림 : 윤형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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