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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 자락에 순하게 깃들어 사는 그는
오랜만에 찾아온 내게 귀한 백화주를 권한다
국화주나 매화주도 아닌 백화주는 처음이라
그 태생과 내력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한다
사시사철 천태산 일대에 피는 꽃을 따다 말려
술을 담갔는데 그 종류가 딱 백 가지라
자연스레 따라붙은 이름이 백화주란다
백 가지 꽃의 맛과 향이 들어 있으니 한꺼번에
쭉 들이켜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며 마셔 보란다
지그시 눈을 감고 하나씩 맛과 향을 따라가니
천태산 골짝과 주변 논두렁 밭두렁이 펼쳐지고
꽃을 찾아왔던 벌 나비며 온갖 새들도 보이고
꽃잎에 스며든 햇빛 달빛 별빛의 숨결도 들린다
심지어 마을 사람들 인정까지 느껴진다 했더니
오랜만에 대단한 미식가를 만났다며 기뻐한다
헤아려 보니 마을 사람들 수도 백 명쯤 된단다
하도나 신기하고 오묘하다는 생각 끝에
사람이 어울려 내는 맛과 향도 저러하겠다 싶어
이름을 백성주로 달리 불러도 좋겠다고 하니
왜 아니겠는가, 잔을 부딪치며 맞장구를 친다
백화주! 백성주!
그날 밤 우리는 백화만발하였다
천태산 :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해발 549.4m)
강진만을 굽어보고 있는 강진의 명산, 산세가 깊으면서도 전망이 뛰어나고 수려한 계곡이 있다.
정수사 좌측에 강진군에서 1995년에 시설한 사방댐이 있고 깊은 계곡이 있어 가뭄에도 수량이 풍부하여 여름철에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그림 : 송태관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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