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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 달의 보폭시(詩)/김선태 2019. 5. 20. 21:11
보름달은 제 보폭을 보여주지 않지만
달팽이보다 느리게 산을 기어올라가서
어느새 꼭대기에 둥근 얼굴을 올려놓는다
보름달은 제 날개를 보여주지 않지만
풍선보다 가볍게 공중으로 날아올라서
어느새 중천(中天)에 환한 거울을 걸어놓는다
그리하여 보름달은
제 빛의 살점을 잘게 뜯어 만물을 살린다
밤새 어둡고 적막한 것들의 친구가 된다
나무 이파리 한 잎에도 저를 내어준다
아무런 말없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움직이는
저 정중동의 은밀한 세계
느리고 둥근 것은 저토록 영원하다
(그림 : 조선아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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